HOME > 한국고서화계보 > 한국화의역사
 
 
삼국의 회화는 중국의 한(漢)나라와 육조시대(六朝時代) 회화의 영향을 토대로
감상적인 목적보다는 실용적인 목적과 기능을 위하여 그려졌다. 주로 고분벽화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고구려의 회화는 어느 나라의 회화보다도 힘차고 율동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고, 백제의 회화는 완만한 곡선 중심의 부드러운 양식이며, 신라는 전반적으로 경직되고 사변적인 느낌을 준다. 이러한 삼국시대의 회화는 담징(曇徵)·가서
일(加西溢)·인사라아(因斯羅我)·백가(白加)·아 좌태좌(阿佐太子) 등에 의해 일본에
전해져 그 곳 회화발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각기 다른 양식을 형성했던 삼국의 회화는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하나로 통합, 조화되었다.
솔거(率居)의 황룡사(皇龍寺) 《노송도(老松圖)》에 관한 일화를 통해 이 시대에 사실적 화풍이 크게
진작되었으며, 당(唐)나라와의 빈번한 문화교류를 통하여 궁정취향의 인물화와 청록산수화(靑綠山水畵)가
성행한 한편, 불교화가 활발히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한국화는 한층 다양하게 발전하여 실용적 기능을 지닌 작품은
물론 여기(餘技)와 감상을 위한 순수회화도 활발히 제작되었다. 그림의 소재도 다양해
져 제왕(帝王)·공신(功臣)의 초상화가 활발히 제작되었고, 《금강산도(金剛山圖)》
《송도팔경도(松都八景圖)》 등의 진경산수화가 태동되었으며, 사대부 화가와
선승(禪僧)화가들에 의하여 흑죽·흑매·흑란의 문인화가 성행하였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 이영(李寧)은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畵)인 《예성강도(禮成江圖)》와
《천수사남문도(天壽寺南門圖)》로 그 이름을 중국에까지 떨치었다.
이제현(李齋賢)의 《기마도강도(騎馬渡江圖)》와 공민왕의 《수렵도(狩獵圖)》 등은 모두 북종적(北宗的)인
원체화풍(院體畵風)을 보이고 있다.
고려시대에 확산된 한국화의 전통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더욱 폭넓게 전개되면서 확고한 기반을 형성하여, 소재는
물론 구도·공간처리·필묵법·준법·수지법(俊枝法) 등에서 두드러진 독자적 양식을 이룩하였다.?
 
조선시대의 회화는 그 변천과정에 따라 4기로 나뉜다.

조선 초기(1392∼1550)
세종 연간을 중심으로 하여 이미 안견(安堅)·강희안(姜希顔) 등의 거장이 배출되었다. 이 시기는 후대 한국 회화
발전의 토대를 이룬 시기로, 중국에서 전래된 여러 가지 화풍을 토대로 하면서도 중국 회화와는 완연히 구분되는
독자적인 양식을 발전시켰다. 16세기에 이르러 단선점준 등의 한국적 준법이 발생되었다.
조선 중기(1550∼1700)
초기의 화풍들이 계승, 지속되는 한편 영모(翎毛)·화조 부분에 애틋한 서정적 세계와 조선시대의 정취를 짙게
풍기는 화풍이 등장하였으며, 묵화의 발전과 함께 문인 화가들이 배출되었고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가
전래되어 부분적으로나마 수용되기 시작하였다.
조선 후기(1700∼1850)
가장 한국적이고 민족적 자아의식이 짙은 화풍이 풍미하였던 시기이다. 영조·정조 연간에 대두된 실학 발전의
영향으로 새로운 경향의 회화기법과 사상이 수용되어 절파계(浙派系) 화풍이 쇠퇴하고 남종문인화가 성행하였고,
독특한 화풍의 진경산수(眞景山水)가 정선(鄭敾)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또 김홍도(金弘道)와 신윤복(申潤福) 등은 당시 생활과 애환을 해학적으로 다룬 풍속화를 그렸으며,
청(淸)나라로부터 서양화법이 전래되어 일부 수용되기도 하였다.
조선 말기(1850∼1910)
진경산수화와 풍속화가 쇠퇴하고 김정희(金正喜)를 중심으로 남종문인화가 세력을 떨친 시기이다.
남종화법의 토착화는 한국 근·현대의 수묵화가 남종화로 치우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한국화의
전통은 국내 정치적 격동에 의해 위축되어 갔으며 장승업(張承業)을 고비로 전체적으로 침체화되기 시작하였다.?
 
1910년 국권피탈을 계기로 한 일 제의 문화말살정책 등으로 한국화는 더욱 위축되었었다.
그러나 11월 서화미술협회(書畵美術協會)를 창설한 안중식(安中植)·조석진(趙錫晉) 등 장승업의 화풍을 이어받은 두 사람의 노력과 그 문하생인 이상범(李象範)·김은호(金殷鎬)·노수현(盧壽鉉)·변관식(卞寬植) 등에 의해 맥락이
이어져 왔다. 이와 함께 문인화 전통이 강한 이희수(李喜秀) 맥의 이응로(李應禿) 등과 전통적인 남종산수화를
정착시킨 허유(許維) 맥의 허영·허백련(許百鍊)·허건(許楗) 등이 근대한국화단을 풍요롭게 했다.
오늘날의 한국화는 민족미술의 원래 얼굴을 되찾고, 이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움직임으로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전통성·고유성에 대한 재인식을 통하여 한국화의 현대화와 세계미술의 주역으로서의 비약이
모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