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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 회화

명대 초기:

명대의 회화는 말기에 이르기까지 원대 회화의 연장선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원말의 혼란에 의해 강남지방이 황폐해지면서 일찍이 화가들의 후원자였던 부호·사원·도관 등은 쑤저우를 필두로 그 지위를 상실하고 말았다. 따라서 영락연간(永樂年間:1403~24)에 이르러 궁정화원제가 정비될 때까지 명대 화단은 주로 중앙보다는 재야에 있었다. 이 시기가 명대 미술의 제1기이다.


절파계(浙派系):

선덕연간(宣德年間)에서 천순연간(天順年間)에 이르는 시기(1426~64)는 명대 회화의 제2기에 해당되는데, 화원을 중심으로 하는 절파계(浙派系) 화가가 융성했다. 절파의 회화는 저장[浙江] 지방 형식에 특유의 거친 수묵화법에 원대의 이성·곽희파의 화풍과 남종화법 등이 복잡하게 얽혀 만들어져 필묵의 기운이 거칠고 호방하다. 이것으로 원대 회화의 특색이 더욱 강조되었다.


오파의 문인화:

명대 회화의 제3기는 성화연간(成化年間)에서 가정연간(嘉靖年間) 중반 시기(1465~1540경)를 가리키는데, 그 전반기에는 절파와 오파(吳派)가 병존했고 그 후반기에는 문인화파가 융성했다. 특히 오파의 문인화는 성화연간에서부터 홍치연간(弘治年間:1465~1505)까지 활약한 심주(沈周)에 의해 그 기초가 놓여졌다고 할 수 있다. 오파 문인화의 형성기에 나타난 원파(院派)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이다.


방고주의(傍古主義)와 전형주의(典型主義):

제4기(1567~1643)의 명대 화단은 보수적인 회화활동과 새로운 창작활동이 병존했다. 화풍뿐만 아니라 매화(賣畵) 방면에 있어서도 직업화가와 문인화가의 동질화 현상이 진행되었다. 또한 동기창에 의한 방고주의(傍古主義)와 전형주의(典型主義)가 제창되었다. 한편 문인화가들은 원대의 묵매도와 묵죽도의 전통을 이어받아 제작을 계속했다


청대 회화

청조의 문인화파는 관학화(官學化) 경향을 보였다. 청대에는 동기창의 의고주의와 전형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명말의 자유로운 회화표현은 후퇴하여 각각 하나의 형태에 꿰어맞추는 경향을 드러냈다. 청대 회화는 강희연간(康熙年間:1662~1722)을 정점으로 형식화가 진행된다. 강희·건륭 연간에는 풍속인물화나 산수화 등이 활발하게 제작되었는데, 화풍이 일률적이며 화가의 개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청조의 화원은 가경·도광 연간(嘉慶道光年間:1796~1850) 이후 급속하게 쇠퇴했다. 다만 재야 화단의 활약이 두드러졌는데, 누동(婁東)·우산(虞山) 두 파 화가들의 화풍에도 강렬한 개성이 보이지 않으며 진부한 정형화를 드러내고 있다(→ 청대회화).


현대 회화

청말 이후에는 전통화법에만 만족하지 않고 해외에서 전형을 구했다. 이러한 경향을 학교파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신해혁명 이후의 최초의 예술가가 된 치바이스[齊白石]는 전통적인 회화인 국화(國畵)에서 규범을 찾았던 사람이지만, 해파(海派)의 천헝커[陳衡恪:1876~1923]에게 인정받아 국립 베이징예술대학의 강사가 되었다. 서유럽에 유학했던 인물로는 황빈훙[黃賓虹:1863~1955]·쉬베이훙[徐悲鴻:1895~1953] 등이 있는데, 이들의 화풍은 현재의 국화에 뚜렷한 영향을 끼쳤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타이완으로 간 저명화가로는 '남장북푸'[南張北溥]로 불린 장다간[張大干]·푸루[溥儒]가 있다. 루쉰[魯迅]의 지도에 의한 목판화의 보급도 주목을 끌지만, 인민공화국의 회화운동을 지탱시킨 것은 1942년의 이른바 〈옌안 문예강화 延安文藝講話〉이다. 화단은 문화대혁명에 의해 한동안 정체되었지만, 위페이안[于非闇]·판톈서우[潘天壽]·우쭤런[吳作人] 등의 활약이 돋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