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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狩野派 (가노파)

에도 초기에는 모모야마 시대의 잔영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큰 규모의 장벽화가 만들어졌으나 가노 단유[狩野探幽]가 변화를 시도했다. 서민들의 생활상을 가미한다든지 화초들을 담채로 스케치한 것 등은 시대상이 반영된 것이다. 시민계급의 성장으로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민간화가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이에 따라 개성적이고 다양한 화풍이 나타나게 되었다.

 

- 고린파[光琳派]

우선 시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고린파[光琳派]의 경우 소다쓰[宗達]·고린[光琳]·겐잔[乾山]·호이쓰[抱一] 등 우수한 화가들이 계속 배출되어 중요한 화파로 성장했다. 이들은 야마토에[大和繪]와 같은 전통에 기반을 두고 그것을 보다 아름답게 디자인함으로써 일본인의 미감을 촉발시키고 있다. 부채·마키에[蒔繪]·병풍·도자기 등 여러 부문에 적용된 이들의 작품은 역시 일본미의 한 전형이 되고 있다.

 

- 우키요에

17세기 후반부터 발달하기 시작했던 우키요에도 시민 계급과 상공업의 발달이 유발시켰던 미술이다. 처음에는 간단한 흑백판화로 시작했으나 곧 채색판화가 등장했고 이어 다색판화로 발전함에 따라 널리 사랑받게 되었다. 스즈키 하루노부[鈴木春信]는 소녀 같은 일본 미인을, 도리이 기요나가[鳥居淸長]는 성숙한 미인을, 그리고 우타마로[歌?]는 미인의 상반신만을 묘사하는 등 기모노를 입은 일본 여인의 아름다움을 잘 묘사했다. 18세기 후반에 들어 우키요에 판화는 인물화뿐 아니라 산수도 다루게 됨에 따라 더욱 성장하는데 호쿠사이[北齊]와 히로시게[廣重]가 특히 우수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들이 수십 개의 연작을 제작한 것을 볼 때 그들의 인기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우키요에 판화는 또 서양에 전해져 인상파 화가에게도 영향을 미쳤음은 특기할 사실이다.

 

남화(南畵)(1646-1712년)

나가사키 항구를 통해 들어온 중국의 명·청나라 회화에 자극을 받아 일어난 남화(南畵)도 중요한 화파이다. 처음에는 다소 모방적이었으나 이케노 다이가[池大雅]와 요사 부손[與謝蕪村]이 일본적으로 소화된 그림을 그리면서 남화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후에는 보다 중국적인 수묵산수화로 돌아가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지쿠덴[竹田], 가잔[華山], 뎃사이[鐵齊]와 같은 화가들이 출현함으로써 남화는 일본적인 색채를 계속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이밖에도 개성이 돋보였던 이토 자쿠추[伊藤若沖]나 소가 쇼하쿠[曾我蕭白]가 기발한 작품을 많이 남겼으며, 서양의 정교한 사실적 기법을 동양적 수묵 처리와 결합시킨 마루야마 오쿄[円山應擧]와 그의 제자 고슌[吳春]이 주목할 만한 작가들이다.

 

시조파[四條派] (1636-1718년)

오쿄 스타일을 더욱 분위기있게 처리한 고슌의 화법은 이후 추종자가 많았으며 메이지 시대[明治時代]의 주요화풍이기도 했는데 이를 시조파[四條派]라 한다. 이렇게 다양하게 발전했던 에도 시대의 화파는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후 서양화의 본격적인 유입으로 양상이 달라지는데, 주류였던 가노파를 비롯해 우키요에·고린파·남화 등이 쇠퇴하고 대신 시조파 계통의 동양화가 일본화라는 명목으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점점 세력화하는 유화(油畵)와 대립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