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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가 한국에 전해진 것은 대체로 고조선시대이므로 한국의 서예는 2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유물로 남아 있는 것은 삼국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 또한 고려시대까지의 진적(眞蹟)도 10여 점에 불과하고 조선시대의 것 역시 임진왜란 이전의 것은 얼마 남아 있지 않다. 그 중 진필(眞筆)은 아니더라도 전하고 있는 상당수의 비갈(碑碣)·금문(金文)·묘지 등을 통해 서예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이 시기는 왕희지체가 크게 유행하였는데, 당(唐)나라 중엽 이후 해서의 전형적인 규범이 정립됨으로써 그 영향이 통일신라에도 크게 미쳐 말기부터 해서가 유행하였다. 그리하여 행서는 주로 왕희지법, 해서는 구양순법이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 때까지 양조(兩朝)의 서예계를 풍미하였다.

초기에는 왕희지의 서체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영업(靈業)의 신행선사비(神行禪師碑)·감산사석조불상조상기(甘山寺石造佛像造像記)·성덕대왕신종명(聖德大王神鍾銘)·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비(寶林寺普照禪師彰聖塔碑)와 김생(金生)의 태자사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太子寺朗空大師白月捿雲塔碑)의 서체가 모두 왕희지의
서풍을 따르고 있다.

영업의 글씨는 왕희지의 <집자성교서>와 구별해 낼 수 없을 정도의 명품이며, 김생은 왕희지의 법을 따르면서도 그대로 모방하지 않고 남북조시대의 서풍과 당(初)나라 초기 시대 저수량의 필의를 참작하여 개성이 뚜렷한 서풍을 창안함으로써, 후일 이규보(李奎報)로부터 <신품제일(神品第一)>이라는 평을 받았다.

한편 이 시대의 서예에서 특기할 만한 것으로 사경(寫經)을 들 수 있는데,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은 한국에서 사경으로 가장 오래된 것이며, <화엄석경(華嚴石經)>은 대체로 구양순의 서풍이 짙은 당나라 때의 사경체이다. 말기의 대가로는 최치원(崔致遠)·김언경(金彦卿)·최인연이 있는데, 최치원의 작품으로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쌍계사진감선사비(雙磎寺眞鑑禪師碑)>이다. 이것은 구양순의 아들 구양통(歐陽通)과 매우 비슷한 풍골(風骨)을 지니고 있다.